나꼼수에 등장한 도올-요즘은 생각 좀 하시는 듯. 그러나....

3여년 전에 도올을 비판하는 서적을 읽고 나서, 도올이 어딘가 방송으로 나올라 치면 객관적으로 그를 바라보려는 습성이 생겼다. 그가 말하는 것이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 그리고 추상적이라는 그의 단어들이 정말 학제적으로 다루어지는 추상적 의미를 다루기 위한 단어들이고 그 용례가 잘 맞는지에 대해서 상식적인 기준을 가지고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요즘 생각이다.

딴지의 나는 꼼수다의 25회 방송은 도올과 나는 꼼수다 4인방의 대화였다. 사실관계는 김용옥교수가 편집되어 방송되지 않은 도올 김용옥 교수의 비속어와 현실정치의 비판적 내용을 이유로 들어 방송에 적합하지 않으니 남은 분량을 방송치 않겠다는 심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필이면 10월 26일 보권선거날 이전에 이런 통보를 받아, 1인 시위를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지금의 시점인 11월 17일은 도올 김용옥 선생의 방송이 다시 재개되게 되었다. 뭐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피해자이니만큼 자리를 마련해 준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여기서 도올의 전형적인 방식이 드러난다. 김상태씨 책에서처럼 자신이 정권에 대고 비아냥 댄 다음 그에 대한 모종의 조치가 들어온다고 생각되면 여지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통해 자신은 건전한 비판이고 이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현정권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느끼니까 먹히지만, 그는 그 이전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한국의 지성, 철학을 대변하는 이라면, 꼭 그렇게 온당찮은 비판을 하고 맞고 돌아서서 울며 구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까?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행동하기 전에 더 성숙하게 생각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학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평소의 언행과 행동들이 자신이 가르치는 지식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보였다면,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그저 빈정대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패턴적으로 하는 행동을 보면, 민중과 대중에 인기에 영합한 불편한 그의 버릇을, 또 민중과 대중이 지지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천년의 지식인 중용과 유교의 모습인지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방송을 들으며 몇 가지 도올 김용옥과 그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각이 건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 동안 항상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주진우기자는 연신 도올 선생의 강의가 최고였다고 극찬하던데, 내가 받은 느낌은 그저 평범할 뿐이었다.

도올은 예전에도 종종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개발 논리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그의 비판서에도 드러나있듯이 그는 새만금 사업에 대해 병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나타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그대로였다. 일관적인 양반이다. 또한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0.0001프로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장군들이 패잔병들이 계급장 달고 나와 위협하듯이 앉아서 우리에게 진실을 설명하는 태도’가 마땅치 않다고 하면서 쉽게 납득이 어렵다는 말을 계속 하였다.


어떤 부분은 동의가 될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도올은 심각하게 자기 자신의 정체성의 오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김상태씨가 여러 번 지적했듯이, 남의 논리는 논리적으로 틀린 것에 대해 과장되게 진술하면서,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서는 품위있게 일치시키는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환경문제는 환경을 그대로 둔다고 좋아지는 일이 아니다. 물론, 강 보완은 필요한 일이겠고, 지금처럼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여서 비상식적인 정책으로 진행하는 사안은 분명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그저 자연에 칼을 댄다고 해서 펄쩍펄쩍 뛰는 논리는 맞지 않다. 만약 강과 관련되어 범람과 가뭄의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의 말을 들었다면 쉽게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방송 말미에, 현 정권이 4대강사업에 대해 옳지 않다는 설명을 정책과 실행의 측면에서 좀 더 강조해서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강바닥을 퍼내는 것 자체에 대해 비판을 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천안함 사건도 마찬가지다. 사실 천안함이 정말 어떤 공격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장성과 군부 시스템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철저한 조사를 한 후에 발표한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왜 ‘패잔병’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국방부의 논리대로 천안함이 공격을 받은 것이라 ‘패잔병’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인들이 계급장을 떼고 나올 일은 아니다. 또한 설사 국민들에게 그런 불온적 태도를 보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학적 사실과 유추관계를 통해 나온 사실을 부정할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저 불편하고 속상하다는 대중의 감정에 자신의 일갈을 통해 해소되길 바랬다면, 그것은 그런 일을 할 사람에게 맡겨야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가 가르치는 스타일때문에 우리는 혼란스럽고, 진정한 가치는 굳이 현실로 옮길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진 지성을 욕설과 비속어를 섞어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다면 그가 가르치는 중용, 인간됨의 가치가 바로 그러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이 결코 ‘학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방송도중 몇 번이나 자신이 ‘이 시대를 사는 철학가’ 로써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철학가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섬세한 논리와 설득의 기술은 심히 부족한 사람이다. 또한 그 스스로 자신이 학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면, 보다 더 섬세하고 사려 깊은 언행을 해야 한다. 그가 학회에서 종종 학술적 논의가 되지 않고 어거지로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다 안되면 비속어를 남발한다는 개성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일방적으로 그를 환대하고 받아들여 주는 환경에서는 물만난 고기마냥 있는대로 떠들어대는 모양새가 방송가 이외에 좋아할 만한 환경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가 대중들이 어떠한 측면에서 정치와 사람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꽤나 유쾌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여느 학자 만큼이나 훌륭한 해석이다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한국의 대표적인 석학의 깜도 안되는 박경철 같은 사람이 말하면 얼마나 논리적이고 유순하게 와닿는지, 그리고 그의 행실이 얼마나 적절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철학의 대들보라는 사람은 노력하는 일반인보다도 부족한 면이 많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간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천성을 논하는 것도 아니다. 직업을 통해 그가 보여주어야 할 전문성이 부족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내가 공부를 많이 해서 존경받고 인기있는 학자가 되더라도 그처럼 스타일을 갖고 싶지는 않다.

by up4201 | 2011/11/17 16:30 | 비판하며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3)

게시물 잠정 중단

잠시 리뷰에 대한 글들을 멈춰두려고 합니다.

논문을 마무리 하는 대로 다시 되돌아 옵니다. 예정은 2012년 3,4월 정도 되겠습니다.

본 게시물들은 글쓰기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하는 훈련입니다. 저작권은 해당 칼럼과 논설관련 발행사에 있습니다.

by up4201 | 2011/10/28 11:1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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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지원의 대상은 북한 주민이다. [한승주 칼럼]

 

최근 우리 정부가 수해로 고통받는 북한에 식품과 의약품을 보내겠다고 통보하고 작년 천안함 폭침 사태 이후 취했던 5-24 대북 제재조치를 완화하려는 가운데 북한군의 연평도 NLL포사격 사건이 벌어졌다. 또한 북한은 지난 21일자로 금강산에 들어가 있는 한국 기업들의 물자와 재산의 반출을 금지하고 사실상 몰수하는 일방적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남북 간의 엇박자는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북 지원을 재개하고 지속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더 넓게는 그동안 빛을 잃어온 대북 포용정책의 타당성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수년간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찬반 논란이 많았다. 햇볕정책을 주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에 너그러운 지원을 함으로써 남북한의 회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얻어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남북교류와 북한의 변화를 통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에 덧붙여 북한의 경제사정을 완화하고 안보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면 핵무기도 포기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 10년간 8조원 이상을 북한에 지원했다.

햇볕정책을 포함하는 포용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북 지원이 북한의 대남정책을 덜 호전적으로 만들고 통일을 앞당기기는 커녕 핵무기 등 북한 군사력 증강에 기여하고 북한정권의 존속을 도와줌으로써 통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처방은 대북 지원을 최소화하고 모든 지원은 북한의 상응조치를 조건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어느 정도의 혜택을 제공하여 우리의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대북 지원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어떠한 목표를 추구하느냐, 그리고 어떠한 혜택을 제공하느냐 하는 것이다.

독일 통일 전 필자가 빌리 브란트 전 총리 등 서독 인사들에게 동방정책 (Ostpolitik)의 목표가 무엇인지 문의했더니 그들은 다음의 네 가지를 열거했다. 첫째, 동독을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둘째, 동독 주민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것, 셋째, 동서독 간의 인적교류와 주거이전 및 통신을 확대시키는 것, 넷째,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서독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동독에 차관을 주고 인적교류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여, 정치적 구금자 석방에 10억 마르크 상당을 보상하고 동독의 교통시설 등 인프라 건설을 도와주었다.

우리가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적극 제공하더라도 북한의 대남정책이나 핵무기 정책, 대외적 행태 자체를 바꾸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음 몇 가지의 중요한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첫째, 우리의 동포인 북한주민의 기아 극복, 의료 환경 향상 등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둘째, 이산가족의 만남, 교신 및 교류를 가능케 하는 등 분단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셋째, 북한주민에게 남한사회의 발전상과 남한동포의 성의를 알림으로써 남북한 주민 간의 동족의식을 고취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다. 넷째, 북한이 중국-러시아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북한 사회의 변화와 개방을 가져오는 데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앞당기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셈법은 어떨까? 북한은 남한이 지원에 인색할 때 남북대화 파탄의 책임을 남측으로 돌리고 북한의 식량부족 등 어려운 경제사정에서 오는 주민불만의 표정을 우리 정부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북한은 남한의 소극적인 지원을 강조함으로써 남측에 대한 호전적 수사를 정당화 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이러한 의도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도 인도적 대북 지원에 더 적극적이고 긍정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지원이 자신들의 사회에 주는 개방적 효과를 경계하는 북한은 우리의 지원 정책에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의 지원 제의를 거부하는 경우 그 손실의 책임은 북한 당국의 몫이다.

우리는 포용정책의 한계를 충분히 인식하면서 필요하고 가능한 부분에서 지원정책을 적절히 구사할 필요가 있다. 다만 남북의 군사적 대치 상태에 비추어 전략물자나 군사적 전용의 가능성이 있는 현금지원에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대북 지원은 북한 주민을 돕는 인도주의적인 목표와 북한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이면서도 간접적인 영향을 동시에 고려해 실시해야 한다. 대북 지원정책은 북한 정권이 아니라 주민과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 북한의 도발 행위와 관련된 딜레마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by up4201 | 2011/10/18 10:51 | 트랙백 | 덧글(0)

사설베껴쓰기

[한승주 칼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유로존 구하기

 

최근 베를린에서 열린 정책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가 연설을 했다. 그는 독일 외교정책의 주춧돌은 첫째, 미국과의 동반자 관계이고 둘째, 유럽과의 공동체 관계라고 설명했다. 메르겔 총리가 미국 및 EU와의 관계를 강조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동독 출신으로 유럽 중심국가 독일의 행정수반을 6년째 맡고 잇는 메르켈 총리는 지난 3월에는 리비아 문제로, 9월에는 그리스 지원 문제로 미국 및 EU와도 관련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입장에 서게 됐다.

 

지난봄 리비아에서 카다피의 정부군이 각종 무기를 동원하여 데모 군중과 반군을 학살할 때 유엔 안보리는 민간인 보호를 위한 국제적 군사개입을 허용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비상임이사국인 독일은 결의안 표결에 기권하고 군사개입에 불참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리비아 사태에 적극적 개입을 주장한 미국-프랑스-영국 등 NATO동맹국들을 극도로 실망시키는 결정이었다. 특히 미국이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메르켈에게 수여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실망은 누구보다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켈은 왜 리비아 개입 반대라는 결정을 했던 것일까? 어떤 사람은 무력 사용을 반대하는 독일의 독특한 정치문화가 대 이라크 전쟁도 반대하고 리비아 개입에도 불찬성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많은 분석가들은 국내 여론에 민감한 메르켈 총리가 리비아에서 무력개입에 반대하는 다수 여론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무튼 NATO의 개입으로 리비아 반군이 정부군을 밀어내고 카다피를 몰락시킨 지금에 와서는 메르켈 총리도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현재 메르켈 총리가 고심하는 문제는 그리스의 금융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유로화와 유럽공동체를 어떻게 구해낼 것이냐는 점이다. 9월 14일자 뉴욕타임스는 ‘유로의 존망이 메르켈의 어깨에 달려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뉴스로 실었다. 메르켈 총리가 정치적 수완을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따라 그리스가 계속 유로 통화국으로 남아 있을지, 또 유로 통화권 전체가 유지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독일을 위시한 유로권  주요 국가들이 구제금융을 제공하여 국가부도를 방지해주지 않는 한 그리스는 국가적 파산에 처할 것이며, 그것은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까지 강타하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유로권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각성을 인식한 메르켈은 그리스 구제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넘어야 할 산이 높고 많다. 우선 독일 내부의 반대여론을 극복해야 한다. 이달 하순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66%의 응답자가 그리스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한 구제금융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쪽은 그리스 등의 방만한 예산과 과잉복지를 위하여 독일이 대가를 지불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9월 중순 유로존의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에 대해 독일이 재정지원을 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판결한 것이 메르켈의 행보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리스 의회는 재정긴축안과 국유자산 매각안을 통과시켰고 정부는 추가적인 긴축안을 발표했으나, 파업-군중시위-세금저항 등의 반대운동이 긴축의 이행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구성되는 트로이카 팀의 구제금융 심사도 지연시키고 있다. 메르켈의 어깨에는 트로이카 팀뿐만 아니라 그리스 국민과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짐까지 지워지고 있다.

 

유로존의 사수를 마지노선으로 간주하는 메르켈 총리는 리비아 개입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여론의 압도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구제금융을 관철하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프랑스 등 주요 유로존 국가들과의 공동보조,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다. 이것이 바로 메르켈이 미국과의 파트너십 및 유럽과의 공동체 관계를 독일외교의 두 주춧돌로 꼽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파산은 세계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아시아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유로존의 파탄을 막기 위하여 외환보유고에 여유가 있는 중국등 아시아 각국도 메르켈의 유로화 구하기 노력을 응원하고 그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by up4201 | 2011/10/17 10:58 | 사설 배껴쓰기 | 트랙백 | 덧글(0)

사설 베껴쓰기 -5-

국회 청문회가 권위를 회복하는 길.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17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비롯한 경제 4단체장을 출석시킨 가운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대한 공청회’를 국ㅎㅚ 환경노동 위원회는 하루 뒤인 18일 조남호 회장을 비롯한 한진중공업 노사 분규 관련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청문회를 개최햇다. 


공청회나 청문회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거나 입법하기에 앞서 관련 당사자와 전문가를 모아 관련 현안들의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다. 특히 국가의 핵심 사안을 다루면서 채택된 증인이 정직한 증언을 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도 있도록 법으로 규정한 국회 청문회는 청문회 중의 청문회로 꼽힌다.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이 집중된 나라에서 국회가 국민을 뜻을 등에 업고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가 바로 이 청문회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국회 청문회는 이런 권위에 걸맞는 평판을 듣지도, 대접을 받지도 못해왔다. 이번에도 증인으로 채택된 조남호 회장은 해위 수주 활동을 핑계로 40여일간 국회 출석을 미뤄왔으나 2주간이나 국내에 머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경련 회장은 국회 출석 하루 전 출국햇다가 뒤늦게 귀국하느라 1시간 지각했다. 청문회에서 나온 답변들도 ‘잘못 알려졌다’는 해명이나 ‘검토해보겠다’는 애매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국회 청문회가 이렇게 겉돌고 부실해진 가장 큰 책임은 국회에 있다. 청문회의 운영주체인 국회는 엄정한 사실과 명확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으로 하여금 우리 사회 핵심 현안의 근본 문제가 무엇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청문회에선 정치인들의 돌출 언행과 정치인들 간에 벌인 활극이 화제가 되는 일이 더 잦았다. 이번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도 한 야당의원이 갑자기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여성을 휴대폰으로 연결하는 바람에 한나라당의원들은 ‘쇼하느냐’고 비난하고 야당의원은 ‘뭐가 두려우냐’고 소리를 질러대 정회 소동이 벌어졌다. 대기업 공청회에선 대업과 대기업 총수들을 향해 ‘완전 먹통이네’ ‘악질’ ‘탈취’ ‘야수’ 등 거칠고 인격 모독적인 표현들이 쏟아졌다. 


의원들은 자신들이 국민의 심정을 대변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TV 카메라에 잡힐 몇 초의 순간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문회가 계속 이런 식으로 운영되면 그 권위는 땅으로 떨어지게 도니다. 청문회의 권위는 의원들이 엄정한 사실과 명확한 논리로 임했는데도 증인들이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세평이 나올 때 비로소 살아날 것이다. 

by up4201 | 2011/08/24 21:59 | 사설 배껴쓰기 | 트랙백 | 덧글(0)

사설 베껴 쓰기 -4-

한국 IT산업, 생존 위해 하드웨어 체질부터 바꿔야.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이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사업부문(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했다. 구글은 지금까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등 휴대용 기기를 작동시키는 기본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개발해 전 세계 제조업체에 무료로 제공해왔다. 그러던 구글이 소프트웨어 개발의 울타리를 벗어나 직접 하드웨어 시장에까지 뛰어든 것이다. 모토로라는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8위로 밀려있지만, 1973년 세계 최초로 상업용 휴대전화를 내놓은 전통 있는 기업으로 1만 7000여건에 이르는 무선통신 관련 특허를 갖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의 아이폰이 18%, 구글 진영의 안드로이드폰이 48%를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소프트웨어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와 핀란드 노키아가 나머지 시장에서 치열한 판매경쟁을 벌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를 인수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도는 것으로 보아 머지않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운영체제 개발과 제조기술을 모두 갖고 있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3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구글은 '아이폰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모토로라와 다른 메이커들을 차별하지 않겠다'며 이번 인수가 안드로이드 진영을 보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오로지 하드웨어 기술에만 의존해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양날개를 갖춘 미국 3대 업체들이 싸우는 틈새에 끼여 설 자리가 줄어들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다. 

삼성전자-LG전자- 팬택은 그동안 하드웨어 기술이 없는 구글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핵심 파트너 역할을 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전해왔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이어 스마트폰 세계 2위에 올라섰다.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우리나라 휴대전화 수출액은 170억달러로 같은 작년 기간보다 14% 늘었다. 

이제 구글이 모토로라를 사들여 하드웨어 생산 기반을 확보함에 따라 국내 제조업체들은 생존을 위해서도 독자적인 운영체제 개발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기술 확보가 절실해졌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선두에 나서려면 제조업체 특유 체질인 상명하복의 기업 내 의사소통 체계부터 바뀌어야 한다. 

by up4201 | 2011/08/23 14:37 | 트랙백 | 덧글(0)

사설 배껴쓰기 -3-

오바마는 다시 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는 스스로 미국 최초의 아시아-태평양 출신 대통령으로 자처했다. 그는 과거에 어느 대통령 보다 한국에 우호적이다. 한-미 동맹 관계는 어느 때보다 탄탄하다. 그가 미국의 교육관계 인사들에게 자주 한국의 교육을 배우라고 말하고, 김치를 찬양하는 것도 한국에 대한 그의 호감을 반영한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한국의 친구인 오바마의 날개가 절반 꺾인 것은 유감스럽다.

오바마의 민주당 정부는 경제의 덫에 걸려 선거에 참패하고 하원을 공화당에 내주고 말았다. 1992년 대선을 돌아보자. 무명의 아칸소주지사 빌 클린턴이 걸프전쟁 승리의 영웅으로 인기 절정의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경제 불황 덕이었다. 그때 클린턴이 내건 선거구호는 ‘문제는 경제야, 이 밥통아!’ 였다. 그 구호는 경제불황으로 생활이 고단한 유권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오바마의 민주당 정부도 미국 사회에 팽배한 ‘문제는 경제야, 이 밥통아’의 정서에 쓴잔을 들었다. 2년 넌 ‘우리는 바꿀 수 있다’는 구호에 매료되어 오바마를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만든 유권자들이 오바마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미국의 경제불황, 특히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경제위기가 전임자인 공화당의 조지 부시 정부 말기에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오바마는 부시의 저주에 걸려 정치적인 재앙을 맞은 셈이다. 오바마 정부는 경기 부양과 경제 살리기에 1조 500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에 육박하는 실업률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주택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실업자가 줄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 불황의 터널에 끝이 보이기 시작해도 유권자들은 그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바마의 업적을 평가하지 않는다.

공화당의 가장 우익에 등장한 티파티는 오바마 정부의 케인스주의 정책을 국민의 세금을 펑펑 써대는 ‘오바마 사회주의’라고 공격하면서 유권자들의 분노와 불만을 자극했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들은 반대로 오바마가 현실정치와 너무 많이 타협해 어정쩡한 개혁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바마에게 프랭클린 루즈벨트이기를 기대한 그들은 이번 선거에서 오바마의 원군이 되어주지 않았다. 중도파는 대통령 오바마가 대선후보 때의 활기를 발휘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오바마는 경기를 부양해 경제를 살리는 데 필요한 올바른 정책을 폈다. 그러나 그는 국민들과 소통하고 공화당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해 티파티 같은 과격한 신자유주의자들이 활개 칠 틈을 주었다. 오바마를 동정하는 사람들도 그가 경제사정이 좋을 때 추진할 의료보험개혁을 불황기에 밀어붙인 것은 정치적인 실책이라고 안타까워한다. 다른 오바마 지지자들은 그가 정책에 성공하고 정치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오바마는 그의 변화를 되돌리라는 반동의 쓰나미에 떠밀려 루비콘강을 건너버렸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의료보험개혁을 대폭 후퇴시키고, 부자들에게 혜택이 많이 돌아가는 감세를 장기간 유지하고, 재정적자를 줄이는 활발한 입법을 약속했다. 공화당 지도부가 합리적인 대안이 없이 오바마의 정책을 뒤집겠다는 티파티의 노선에 끌려간다면 미국의 사회경제정책은 1980년대의 레이건 시대로 후퇴할 것이다. 루비콘강 저쪽에서는 그렇게 살벌한 무대가 오바마를 기다린다. 오바마는 공화당과 맞서거나 타협을 하거나 남은 임기 2년 동안 국내문제에 치중할 것이다. 북핵-팔레스타인-이라크-아프간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한미FTA에 우호적인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공화당은 일반적으로 북한 같은 나라를 싫어한다. 북한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가 열려 경제지원 문제가 구체적으로 부상하고 의회의 예산승인을 받을 단계에 이르면 공화당 의회가 1994년 제네바 핵 합의 때처럼 다 된 합의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은 불안요인이다. 중국의 부상과 중-일, 러-일 영토분쟁, 불안한 북한 내부사정으로 동북아 정세가 크게 요동치는 지금 미국 대통령의 확실한 존재감이 요구된다. 1994년 중간선거 패배후 클린턴은 전열을 정비해 자유주의 원칙을 확인하고 공화당이 드러낸 약점을 활용하고 협상과 설득으로 필요한 정책을 펴는 데 성공했다. 공화당 의회에서도 티파티 세력과 지도부의 노선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오바마가 클린턴의 전례를 따라 도전의 기회로 돌려 국내정치를 안정시키고 동북아에서 중국 견제와 한반도 문제 해결의 동력을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by up4201 | 2011/08/22 11:18 | 사설 배껴쓰기 | 트랙백 | 덧글(0)

통섭의 한구절-자아, 영혼 그것은 무엇인가?

시간을 계속 투자하면서 통섭을 읽어보고 있다.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하루에 15분 정도만 투자하는 정도다.


오늘은 영혼과 마음에 대한 논의 부분을 읽었다. 구절은 다음과 같다.


자아란 뇌로부터 독립된 존재자가 아니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기묘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나리오들의 극 중 주인공이다. 자아는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중심 무대에서 활동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감각들은 몸속에 위치해 있고 그 몸은 모든 의식적 행동들의 통치를 표상하도록 마음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와 몸은 분리될 수 없도록 융합되어 있다. 자아를 시나리오와 독립적으로 창조된 무엇으로 보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자아는 몸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몸도 자아 없이는 오랫동안 생존하기 힘들다. 몸과 자아의 연합은 너무 강해서 물질적 대응물이 없이 영혼만이 천국이나 지옥에 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배워 왔듯이 심지어 예수와 마리아까지도 몸을 가지고 천국으로 올라갔다. 물론 천상의 속성을 가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몸은 몸이었다.만일 자연주의적인 마음 이론이 모든 경험적 증거들이 보여 주듯이 정말 옳다면, 그리고 전통 신학에서 말하는 영혼 같은 것도 실제로 존재한다면 신학은 해결되어야 할 새로운 신비를 갖게 될 거이다.


비 물질적인 영혼이 마음으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지만 몸에서는 분리될 수 없다는 신비를 도대체 어덯게 풀 것인가?

통섭 220P



논의는 이렇다. 자아라고 인지되는 정신활동은 감각을 받아들이고 기억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 주체이다. 즉 말하자면, 뇌의 주요 정신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의 주체가 바로 자아로 볼 수 있는데, 만약 종교가 가르치는데로 육신이 죽어서 묻힌다면 그 주체는 어디로 분리되어 가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인용한 구절은, 과거 성인들이 모두 육신과 함께 천국으로 승천하였는데, 육신과 자아가 분리되지 않은 그들의 전말을 보면서, 동시에 죽어야 하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논리가 명확하고 앞서서 뇌와 마음이 같다는 논리에서 출발한 '영혼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영혼이라고 부르는가?


만약 육신에서 분리되어 천국으로 간다면 우리의 영혼은 무엇으로 고통을 받는가? 기억을 담당하는 뇌도 없고, 외부로부터 감각을 받아들일 신체 기관도 없다. 과거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환희의 기쁨을 누릴 신체적 반응에서 촉발한 감정도 없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영혼의 기쁨으로 보아야 하는가? 과연 그것은 체득 가능한 것인가?

by up4201 | 2009/11/10 14:45 | 트랙백 | 덧글(0)

도올 김용옥 비판

얼마전 네이버를 검색하다 올해의 책 리스트에 오른 책 제목들을 보다가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도올 김용옥 비판에 대한 책이다.

어떠한 이유였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도올 김용옥선생이 신약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하고 그런 이유로 어떤 유명한 목사가 그를 친하게 대하다 욕을 먹기도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그 사람이 가진 흥미라는 것이 단순한 수준을 뛰어넘는 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TV에 강의도 하고 가끔씩 정신이 번쩍 들정도로 제도권을 비판하는 말도 서슴치 않아 자기 주관이 강하고, 쇼맨십이 강한 인기인이겠거니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의 행보가 단순히 방송용 언어가 아니라, 논어등에 대한 진중한 해석이 있다고 하여, 의외로 진중한 학자의 면모가 있나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그를 비판하는 글도 있는 것 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학계의 유명인사라고 생각했었다.

김상태씨가 쓴 도올 김용옥 비판은 내가 생각한 김용옥의 허상을 깨뜨려버리는 책이었다. 책 첫머리부터 그는 사깃꾼이고, 그가 한국의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추앙받는 이유가 한심스럽고 개탄할 만 하다고 하였다. 이사람 왜이렇게 독설적인가 하는 생각을 갖고 책을 계속 읽다 보니, 비단 김용옥 뿐아니라, 학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로써는 분명히 지키고 따라야 할 학자로서의 자긍심과 지속적인 노력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게 하여 주었다.

공부를 하는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는 이유는 글쓰기라는 것이 학문을 통해 새로운 지적 완성을 추구한다는 것 때문이다. 보통 산업현장을 빗대어 학문이 얼마나 고매하고 밥버러지 안되는지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익숙해져있다. 하지만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에 학문이라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소위 글만쓰는 사람으로써의 학문도 죽은 학문이며,

김상태씨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대중의 무지를 악용하여 자신의 인기를 구축하고 실존하지 않는 허구를 만들어 지성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꾀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사기이다.

김상태씨의 논리대로 말하자면 도올은 분명한 사기꾼이고, 악랄한 사회 좀먹는 자다. 아니 비단 김상태의 논리만으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도올도 자신이 생각하는 학자적 모습과 자신의 모습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아니 먼 거리에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던 것은 잠시나마 도올이라는 사람이 대단한 존재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 내자신이었다. 그렇기도 하지만 , 무엇보다 다시 한번 실증적 가치를 중시하는 학문인 디자인쪽에 있으면서도 그가 지적하는 위험한 지식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다.

그동안 내가 썼던 논문들이 공개하기 민망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무엇때문에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또한 타인에 앞서 겸손해야 하는 것인지 깨닫는 발전의 시금석이 되었다.

이제 그의 글 몇가지를 인용하면서 내가 앞으로 나아갈 학자의 기본기를 어디서 얻어야 할지 되새김질 해보고 싶다.


[추가]

이글을 썼었을때가 2008년 11월 이었다. 이후 도올 김용옥씨는 논어에 대한 해석을 다시 펴내었다. 일부의 평가는 김용옥씨가 그동안 자신이 주장한 [제대로 된 해석]에 기반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아직 보지 못해 평가할수 없고, 사실 그러한 학문의 글을 평가할 수준도 못된다. 그러나 이 글을 쓴 후 다시 도올 김용옥 특강 [MBC]을 전부 리뷰해 본 결과 김상태씨의 글에 더욱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가 학계에 데뷔한 것은 1990년대 초이다. 그간 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주지할 만한 사실이다. 뿐만아니라 그가 최근에 좋은 책으로 만회하였다 하더라도 그가 써온 그간의 책들은 말 그대로 양서가 아니다.

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공개함으로써 객관적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귀에 좋게 들리는 말로 현혹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얼마전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시면서 다시금 김용옥의 인터뷰내용으로 아고라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글쓴이는 도올의 예찬론자인듯 하다. 그는 추종자가 많다. 문제는 종교에 버금가는 신뢰를 보인다는 점이다. 학계는 그래서는 안된다. 어떤 학자가 새로운 학설로 신뢰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뛰어넘는 다른 연구가 나온다면 신뢰 자체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 물론 인간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성과에 대한 신뢰이다. 도올이 지성으로 학계에 인정을 받으려 했다면, 그가 고려대학교에서 계속되는 파행으로 무명대학으로 여러번 자리를 옮기게 되는 상황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에 좋은 책을 냈다 하니 아마 그의 비판과 연구가 다시 재고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간 보여준 기행의 행태는 학자로써의 면모가 아니라 엔터테이너의 면모였다. 그에게는 진지한 비판도, 즐기기 위한 비판도 아무것도 사치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by up4201 | 2009/04/19 10:35 | 비판서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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